남이 듣고 있다는 것

팟캐스트
에세이
구독자가 생기고 나서 생긴 이상한 고민 — 솔직함과 조회수 사이, 그리고 대구에서의 두 달.
Published

2026.04.26

얼마 전에 구독자가 2명이 됐고, 조회수가 70회가 나왔다. 숫자 자체는 작지만, 그걸 보는 순간 뭔가 달라졌다. 아, 누군가 실제로 듣고 있구나. 혼자 말하는 것과 누군가 듣고 있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었다.

그때부터 이상한 고민이 생겼다. 계속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하면 되는 건지, 아니면 더 많은 사람이 들을 만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지. 1화랑 2화를 비교해보니까 ’아무것도 아닌 내가 팟캐스트를 하게 된 이유’를 다룬 1화가 조회수가 훨씬 높았다. 그러니까 그쪽 방향이 맞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드는 거다.

근데 생각해보면 이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. 나는 누군가 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쪽으로 가고 싶어진다. 팟캐스트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, 일상에서도 계속 그래왔다.

올해 초에 대구에 내려가서 일을 한 적이 있다. 부모님 근처였는데, 부모님은 내가 보다 안정적인 일을 했으면 했다. 공무원이나 대학 행정직 같은 것들.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부모님이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반응하셨다. 그 반응이 좋으니까, 나도 모르게 그쪽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가게 됐다.

근데 실제로 그 일을 해봤다. 그리고 두 달 만에 퇴사했다. 막막했다. 올라오고 나서 정해진 것도 없고, 다시 일을 구해야 한다는 게 무거웠다.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. 거기서 계속하면 10년, 길게는 30년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, 그건 못 하겠다는 게 더 선명했으니까.

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조언을 하셨던 게 아니다. 오히려 그 반대다. 하지만 그분들의 긍정이 항상 옳은 방향을 가리키는 건 아니었다.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, 나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.

팟캐스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. 조회수가 높은 쪽이 더 맞는 방향인 건 아닐 수 있다. 나는 몽테뉴가 에세이를 썼던 것처럼, 그냥 내 안에 있는 생각을 내 언어로 풀어보고 싶어서 이걸 시작했다. 거창한 결론을 내리려는 게 아니라, 그냥 생각이 있으니까 말하는 거다. 그 태도를 기억하자고,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.